최근에는 골목의 카페, 술집, 독립서점 등이 주민들의 안녕을 챙기는 공간이 됐다. 서울 한남동 남산맨션 1층에 있는 보마켓은 생활제품을 판매하고 간이 식당을 겸하며 따뜻한 마을 카페 같은 친근한 분위기를 동시에 지향하는 ‘생활밀착형 동네 슈퍼마켓’이다. 가까운 식료품점이 자전거나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외떨어진 아파트 단지의 특성상 누구나 오가며 들를 수 있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한다. 주민들의 모임 장소가 되기도 하고, 동네 강아지의 생일 파티가 열리거나 학교나 학원을 마친 아이들이 잠시 들러 간식을 사먹으면서 부모를 기다리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동네의 맥락을 반영한 동네 커뮤니티인 셈이다.
빨래방도 비슷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 부산 산복도로에 위치한 ‘산복빨래방’은 지역 언론의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부산일보의 기자와 PD가 모여 빨래방을 열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은 단기 프로젝트였다. 2022년 5월부터 6개월 동안 열린 산복빨래방은 동네 주민들이 실제로 빨래도 하면서 동시에 소통할 수 있는 거점 역할을 했다. 이 프로젝트는 부산일보에서 기획기사로 진행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는데,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시대에 ‘빨래’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안녕을 물을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1인 가구가 많은 동네에서는 단골 술집에서의 한잔, 자주 가는 카페 사장님과의 짧은 대화 자체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오프라인 접촉보다 온라인 접속이 더 잦은 시대에 나의 안부를 물어봐주는 대상이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내 집 근처에 있는 단골 가게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나의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단골 카페, 주문하지 않아도 선호하는 안주를 내어주는 단골 술집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부심이자 안도가 되기도 한다.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안식처를 만들고 싶은 젊은 세대의 마음이 반영된 현상이다.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시작한 ‘당근마켓’도 동네를 기반으로 ‘돌봄’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당근마켓은 ‘당근’으로 사명을 변경했는데 ‘당근마켓’이 근처에서 구매를 할 수 있는 N차 신상 커머스만을 지향했다면, 이제는 “근처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쓰던 물건을 나누고 맛있는 빵집을 알게 되고 새로운 자전거 친구를 만드는 등 이웃과 조금은 가깝게, 조금은 느슨하게 함께 사는 법을 매개하는 서비스로 확장함을 의미한다. 실제로 당근은 사람들이 동네를 기반으로 취미 모임을 만들고 관계를 맺는 장(場)으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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